도나 타트, 비밀의 계절

제가 이 책을 읽었다는 건 분명 누군가 이 책을 '미스터리'라고 소개했다는 건데 - 누군지 기억은 안 나지만 그 분 참, 미스터리라는 장르에 대해 홈즈가 왼쪽 뺨을 때리면 왓슨에게 오른쪽 뺨도 때리라고 할 정도로 관대한 분이거나, 혹은 저를 낚아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려고 한 게 분명합니다. 광의의 미스터리로 봐주기도 힘든 작품이거든요. 

책 분량은 두 권 합쳐 약 1000페이지 정도로 길지만 진행이 굉장히 더딥니다. 젊은이들 사이의 미묘하고 아슬아슬한 관계, 아름답지만 위태로운 청춘들, 저 이런 거 아주 좋아하는 사람입니다만 이 책은 끝까지 읽어주기가 아주 힘들었습니다. 너무 답답해서요... -_- 

대강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주인공 리처드는 캘리포니아 출신의 대학생입니다. 캘리포니아에서 의대 갈 준비를 하던 리처드는 어느 날 갑자기 문학을 공부해야겠다고 그래! 결심하고 (리처드의 인생극장) 버몬트 주의 명문 사립, 햄든 대학으로 오게 됩니다. 우여곡절 끝에 줄리언 모로 교수 밑으로 들어가 고전을 공부하게 되는데, 이 고전문학과에는 학생이 다섯 명밖에 없습니다. 헨리, 버니, 찰스, 커밀러, 프랜시스. 리처드는 이 다섯 명 사이에 껴보려고 하지만 잘 되지 않고, 한 학기 내내 겉도는 채로 그들과 어울려 지냅니다. 교수와 이 다섯 학생들은 디오뉘소스를 숭배하는 것 같아보이지만 이것도 뭐 제가 상상했던 것처럼 '미륵의 손바닥'스럽게 심각한 수준은 아니고 영문과 학생들이 셰익스피어를, 영어과 학생들이 촘스키를 숭배하는 것 정도라고나 할까요. 아무튼 어찌저찌 해서 한 건의 살인이 일어납니다. 그리고 고통스러울 정도로 서서히, 다음 살인이 일어나는데 피해자가 죽으려는 순간에 1권이 끝납니다. 이미 1권에서 모든 사건이 벌어진 데다가 이 소설의 주인공들은 홈즈도 포와로도 미스마플도 브라운 신부도 메구레 경감도 펠 박사도 아니고 (마음이 급해서 누락된 명탐정 분들께 심심한 사죄의 말씀을...) 심지어 홈즈가 '우둔하다'고 혹평한 르콕 탐정만도 못한 놈들이라 2권도 전혀 재미있어질 기미가 보이질 않습니다.  

순수문학과 장르문학의 이상적인 만남...이라고 누가 그러던가요. 제가 학교에서 수업시간에 다루는 고전 문학 텍스트도 이보다는 재미있고, 신본격 미스터리도 이보다 더 깊이있게 인간에 대해 고민한다고요. 책상 한켠에 빌려놓은 책이 쌓여있는데 이 책 1000페이지를 읽느라 T-T 하라 료, 레이몬드 챈들러, 마츠모토 세이초, 랜달 개릿, 호시 신이치가 아직 기다리고 있다는 걸 생각만 해도 저는 분하고 원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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